
전신마비 재벌과 전과자 출신 백수가 한 공간에서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무너진 건 장벽이 아니라 편견이었습니다. 영화 <더 업사이드>를 처음 봤을 때 제가 꽃집에서 겪었던 일이 겹쳐 보여서 끝내 자리를 못 뜨고 엔딩 크레딧까지 다 봤습니다.
동등한 시선이 만들어낸 관계의 변화
영화의 핵심 구조는 단순합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전신마비 장애인인 필립 라카스가 생활보조원을 구하는데, 면접장에 백이 넘는 지원자가 몰립니다. 그런데 정작 필립이 선택한 사람은 간방 출신의 전과자 델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영화 내내 조금씩 드러나는데, 저는 그걸 한 단어로 요약하면 '비대칭 없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생활보조원(Personal Care Assistant), 줄여서 PCA라고 부르는 이 직종은 장애인의 일상적인 신체 활동 전반을 지원하는 전문 돌봄 인력입니다. 여기서 PCA란 단순한 간병인이 아니라 당사자의 자율적인 생활을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해주는 파트너 역할을 합니다. 문제는 많은 PCA 지원자들이 필립을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봤다는 점입니다. 반면 델은 필립을 그냥 한 명의 사람으로 봤습니다. 도관을 교체하는 처치에 질색하고, 핫도그 가게에서 1,500개를 달라고 농담을 던지고, 페라리를 몰며 웃는 필립 옆에서 델은 특별히 배려하려는 티를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꽃집을 운영하면서도 비슷한 실수를 한 적이 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오시는 단골손님이 계셨는데, 처음에는 출입문 턱이 걱정돼서 달려나갔다가 정중하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솔직히 그 순간 민망함보다는 혼란이 컸습니다.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 왜 거절당하지? 싶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분이 나중에 하신 말씀이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꽃 사러 나오는 게 세상이랑 다시 연결되는 저만의 방식이에요."
그때 제가 깨달은 건, 도움을 주는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기 전에 먼저 행동한다는 것이 문제였다는 점입니다. 영화에서 델이 정식 간병 교육 없이 무모하게 행동하는 장면들이 대부분 긍정적으로 그려지는데, 이 부분은 저는 좀 아쉬웠습니다. 장애인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과 전문 지식 없이 처치에 개입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신체 돌봄 현장에서 비전문적인 개입은 당사자에게 오히려 위험이 될 수 있습니다(출처: 한국장애인개발원).
- 필립은 지원자들 중에서 '예상 밖의 반응'을 가진 사람을 원했습니다 — 델이 그것이었습니다
- 델은 도관 교체 같은 의료적 처치에 질색하면서도 결국 해냈고, 이 과정이 둘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됩니다
- 필립이 릴리에게 답장을 보내기 시작한 것도, 오랜만에 웃음을 되찾은 것도 델이 그를 '환자'가 아닌 '친구'로 대한 이후부터입니다
편견 없는 우정이 현실에서 갖는 의미
<더 업사이드>는 프랑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2011)을 할리우드 감성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입니다. 원작은 실화를 바탕으로 했고, 두 주인공 모델이 지금도 친구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한 영화적 설정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리메이크(remake)란 기존 작품의 줄거리나 주제를 바탕으로 새로운 문화권·시대감각에 맞게 재창작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더 업사이드>는 원작의 감동을 살리면서 미국 사회의 계층 격차와 인종 문제를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필립과 델의 관계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장면은 필립이 델을 해고하는 부분입니다. 릴리와의 첫 만남이 어긋난 뒤 필립은 그 책임을 델에게 돌립니다. 그 장면이 오히려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진짜였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더라고요. 진짜 감정이 오가는 관계에서만 그런 식의 상처도 가능하니까요.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델이 필립을 데리고 패러글라이딩을 선물하는 장면에서, 저는 그 해고가 끝이 아니라 관계의 한 굴곡이었다는 걸 새삼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도자기 화병을 선물해주셨던 그 손님과의 관계도 처음부터 자연스러웠던 게 아닙니다. 제가 몇 차례 어색하게 배려하고, 또 거절당하고, 그냥 꽃 얘기만 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편한 사이가 됐으니까요. 관계라는 건 결국 시행착오의 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더 짚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에서 필립이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데는 그의 경제력이 큰 역할을 합니다. 페라리, 패러글라이딩, 고급 레스토랑 — 이것들은 모든 장애인에게 열려 있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장애인 고용 촉진 및 직업재활법 등 제도적 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 환경은 여전히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영화가 아름다운 만큼, 그 아름다움이 특정 조건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도 함께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남기는 질문은 유효합니다. 나는 지금 내 주변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는가. 상대방을 돕는다는 명목 아래 사실은 나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있는 건 아닌가. 제가 꽃집에서 처음 달려나갔던 그 순간이 정확히 그랬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더 업사이드 원작이 따로 있나요?
A. 네, 2011년 프랑스에서 제작된 <언터처블: 1%의 우정>이 원작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프랑스 박스오피스 역대 2위를 기록한 명작입니다. <더 업사이드>는 이 원작을 할리우드 감성으로 재창작한 리메이크작으로, 주연은 브라이언 크랜스톤과 케빈 하트가 맡았습니다.
Q. 영화에서 필립이 생활보조원을 고집한 이유가 뭔가요?
A. 필립은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이 오히려 그를 '관리 대상'으로 대하는 방식에 지쳐 있었습니다. 델처럼 장애나 부에 압도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사람을 원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활보조원이란 단순 간병이 아니라 당사자의 일상 자율성을 지원하는 역할이기 때문에, 태도와 관계의 질이 자격증보다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합니다.
Q. 장애인을 배려할 때 어떤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하나요?
A. 제가 꽃집에서 직접 겪어보니, 가장 중요한 건 먼저 행동하기 전에 상대방의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것과 무조건 달려가는 것은 전혀 다른 메시지를 줍니다. 도움이 필요한지, 어떤 방식이 편한지를 먼저 물어보는 습관이 진짜 배려의 시작입니다.
Q. 더 업사이드가 장애인 묘사에서 아쉽다는 평이 있던데 왜 그런가요?
A. 델의 무모한 행동이 매번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구조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지적입니다. 전문 교육 없이 신체 처치에 개입하는 장면은 실제 돌봄 현장에서 위험할 수 있고, 필립처럼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장애인의 삶이 보편적인 것처럼 그려질 수 있다는 점도 비판의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감동적인 메시지와 현실적 한계를 함께 보는 시각이 필요한 영화입니다.
결론
더 업사이드를 보고 나서 제가 오래 붙잡고 있던 질문은 "나는 누군가를 도울 때 그 사람의 방식을 먼저 물어본 적이 있는가"였습니다. 꽃집 손님이 건넨 도자기 화병은 지금도 계산대 옆에 있고, 그 화병을 볼 때마다 저는 그 질문을 다시 꺼냅니다.
이 영화는 장애 극복 서사가 아닙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서로를 편견 없이 바라보면서 각자의 결핍을 채워가는 이야기입니다. 영화적 과장과 현실적 한계가 공존하지만, 그 메시지만큼은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합니다. 동등한 시선을 가지는 것, 그게 어렵다면 적어도 먼저 묻는 것 — 거기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